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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재앙과 별의 이야기

  • 2019.10.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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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전에 읽으면 좋은 것들


I Link : 황금의 별의 이야기

II Link : 당신에게 영원을 바치며


*언제 사록이 올라와도 이상하지않게 하기위해 올리는 떡밥 글로그입니다^.^......

졸릴때 드문드문 조각내서 써서 붙인거라, 몇번 검토하긴했지만 이상한 부분있으면 말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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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존재가 그렇지 못한 것을 사랑했을 때… 재앙이 온다는 것. 

“무서워서… 후회할 것 같아서 무서운 거야.” 

  




                       *

  



세루스는 멍하니 창밖의 밤하늘을 보며 창틀에 앉아 있다가…문득, 제 품에 무언가를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검은 표지에 하얗고, 노란별들. ‘황금의 별의 이야기’. 내가 왜 이 동화책을 가지고 왔지? 이걸…읽으려고 가져왔던가? 혼란스럽고 의문어린 낯이 표지를 지그시 바라본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가, 세루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아.


  

자신이 아니라, 아이테르. 제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가져왔었다. 아이는 잠들기 전 이 동화를 들으면서 자는걸 좋아했다. 매일을 들려주어도 늘 한결같이 재밌어하며 행복한 얼굴로 잠이 드는 그 천사 같은 모습.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어째선지 따뜻해져서…그래. 그걸 느끼기 위해, ‘오늘도‘ 읽어주려고 가져왔구나. 세루스는 조금 낡은 표지의 겉부분을 쓸었다.


  

그런데 왜 이리 낡아 보이는가? ‘어제는’ 이것보단 말끔한 상태였던 듯한데. 동화책의 상태가 마치 몇 년은 흐른 것같이 생겨 보였다. 이상함도 잠시, 세루스는 순간 아이테르를 떠올리며 아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봐 책을 들고 급히 일어섰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제 저택의 복도로 나온 세루스는 또다시 이상함을 감지했다. 어두운 것을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복도의 곳곳에 둔 촛대들이 전부 꺼져있거나 없었다. 아이를 들이면서 고용한 사용인조차 없는 게 꼭 유령 저택 같다. 마치 자신만 이곳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나밖에 없다……?

  


세루스는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꼈다. 윽…머리를 짚으며 비틀거리다 이내 손에 들고 있던 동화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벽을 짚으며 위태롭게 서있는 모습을 창밖의 달빛이 지켜보고 있다. 헛구역질까지 해대며 세루스는 식은땀을 흘린다. 몸이 왜 이러지? 자신도 알 수 없는 현상에 세루스의 눈이 흔들린다.

  


“세루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세루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카를? 네가 왜 여기에….”

“아니, 내 아내한테 줄 책 가져온 다해서 한참 기다렸는데! 도대체 이 컴컴한 복도에서 뭐하고 있는 거야?”

  


조금 화난 듯한 어조지만 눈빛은 퍽 걱정스럽다. 세루스는 여전히 자신의 친우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그리고 아내는 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하며 혼란에 빠졌다. 난…나는……. 고장 난 이처럼 말을 버벅거리는 세루스의 모습이 무척 낯설다. 카를이 그에 당황하다 잠시, 뭔가를 이해한 건지 세루스의 양쪽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너 또 까먹었구나!”

“…아.”

“이젠 하다하다 방금 있었던 일까지 까먹은 건가? 너도 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네.”

  


세루스는 카를의 말에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결국 내뱉어지는 말은 없었다. 카를의 말에 세루스또한 이해했으니깐. 저 말을 보아하니, 자신이 잊어버린 것 같았다.

  


이번엔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을. 친우의 손에 끼워진 반지에, 짧았던 그의 머리가 길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리고 세루스는 생각했다.

  


아이테르는? 그 아이는 어디 있지? 카를이 바닥에 떨어진 동화책을 주웠다. 굳은 채 서있는 세루스를 건들자 놀란 듯 뜨인 눈동자가 카를을 바라본다.

  


“뭘 그리 놀래?”

“아, 아무 것, 도….”

“허, 말까지 더듬고…뭔 잘못이라도 했어?”

  


농담처럼 말하는 그에 세루스는 애써 외면할 뿐이다. 카를이 이상하단 듯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인다.

  


“됐고 빨리 가자고. 내 아내님이 기다리거든”

“아내?”

“응? 나 결혼했잖아. 유부남이라고 유부남. 저번에 결혼식도 왔다 갔으면서 하하!”

  


호탕한 웃음이 복도에 울려 퍼진다. 행복 가득한 웃는 얼굴을 세루스가 지그시 바라본다. 그가 이런 얼굴도 지을 수 있게 됐구나하는 신기함과 친우의 뒤늦은…? 결혼소식에 놀라움 반이었다. 내가 결혼식까지 다녀왔다니….



세루스가 그에게 자신이 잊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에 대해 물어보려던 찰나, 카를이 빨리 얼른 가자고 보채는 통에 물어보지 못한 채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세루스는 카를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랑스러워, 마음씨까지 곱지, 아름답기까지 하고, 얼마나 상냥하며……. 그래. 무척 잘 알 수 있었다. 그의 아내사랑 및 자랑을 얼마나 들었을까, 드디어 그의 아내가 있는 방 앞까지 도달했다.



카를이 문을 열며 세루스가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세루스는 무척 놀라고 말았다.



“여보!”



카를이 제 부인에게 달려간다. 연갈색 머리에 다정한 녹안. 세루스는 그녀의 귀를 바라보았다. 둥그런 귀, 인간.



아…. 다시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녹안의 여인이 제 남편을 애정 어린 눈으로 맞이하다 그의 뒤의 금안의 뱀파이어를 발견한다. 마치 녹음의 숲이 별님을 보고 반가운지 제 초록의 잎들을 살랑이며 환영하듯, 세루스를 맞이했다.



“세루스씨! 오셨군요.”



카를이 말했던 것처럼 꽤나 사랑스레 웃는다. 자신을 알고 있는 말투. 아, 내가 잊었다고 했던가. 세루스는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에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녀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어쩌다보니 늦었구나. 미안하단다. 많이 기다렸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방안에 있는 명화들도 그렇고, 밤하늘도 예뻐서 구경 중이었는걸요.”

“우리 아내가 많이 기다렸댄다!”

“카를.”



카를의 장난어린 말에 그의 부인이 정색하며 그를 불렀다. 애정가득한 눈이 한순간에 한심한 한량을 보는 눈빛이라 카를이 꼬리를 접었다. 예…죄송합니다…. 기어들어가는 사과를 들으며 세루스는 제 친우가 그녀에게 잡혀 살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저런. 세루스의 가엾다는 눈이 그에게로 향한다. 카를이 두 여인의 기에 질려하며 동화책을 제 부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의 얼굴이 화사해진다.



“어머!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렸을 때 읽었었는데…….”



그의 부인이 동화책을 안으며 감사를 표했다. 세루스씨 고마워요.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었는데, 이제는 절판돼서 못 보나 싶었어요. 세루스가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다 입을 떼었다. 

  


“있잖니,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란다. 내가 그걸 빌려주려고 아까 갔다 온 거니?”

“네?”

“아, 맞아. 우리 아내님이 그거 읽고 싶은데 구할 수 있는 곳이 너밖에 생각이 않나서. 그래서 내가 너한테 부탁했는데 네가 그거 빌려주겠다고 그래서 갔다 온 거 맞아.”

  


그의 부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를이 그녀에게 세루스의 특이한 기억력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러면… 혹시, 제 이름도 기억 않나시나요?”



그녀가 조심스레 세루스에게 물었다. 세루스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의 부인이 어머, 하며 다시금 놀라워했다. 카를이 세루스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잠시만, 하며 둘 사이를 가로 막았다.

  


“아니, 세루스. 너 어디까지 잊어버린 거야?”

“네가 이곳에 왔다는 것도, 결혼한 것조차도 몰랐단다. 그냥 여느 때랑 같이 아이테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려고 가는 건줄 알았는데….”

“아이테르라고? 하…….”

  


카를의 얼굴이 못 들을걸 들은이마냥 더욱 더 찌푸려졌다. 세루스가 왜 그런 표정이니? 하고 물었지만 카를은 답을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질 못했다.

  


“너… 이건 내가 말해주는 것 보단 그냥, 네가 기억해내는게 나을 것 같다. 스스로 기억해내는건 좀 느리긴 해도 가능은 하잖아.”

“가능은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거지? 그냥 알려주면 되는 걸텐데, 카를.”

“내가 말해줄 수 있는게 아냐! 말해준다면 네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겠다고!”

  


부인을 제 뒤에 숨기며 카를이 날카롭게 일갈했다.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모를 괴물을 바라보듯 제가 사랑하는걸 지켜내려는 눈이었다. 세루스가 제 친우의 그런 눈에 머릿속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둘 사이의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그의 부인이 뒤에서 그 둘을 잠시간 바라보더니 카를의 팔을 붙잡았다. 카를이 응? 하면서 그의 부인에게 얼굴을 돌리다가,

  



  

짝!

  



  

““!””

  


두 뱀파이어의 눈이 창밖의 달 마냥 동그래졌다. 카를이 돌아가 버린 시야에 깜빡거리다, 화끈화끈한 볼을 매만졌다. 그의 부인이 단호한 어조로 그를 다그쳤다.

  


“카를!”

“으, 응? 아, 아니. 네?”

“무례하게 무슨 짓이에요!”

  


부탁을 하러온 입장인데 말을 그런 식으로 밖에 못해요? 예의는 어디다가 놔두고 온 거에요! 정말, 실망이에요 카를! 다다닥, 쏘아지는 말들에 카를의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의 부인이 그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오늘은 각방이에요! 얼른 나가요!”

  


각방! 나가요! 각방…! 나가요…! 각방…….

  


메아리처럼 두 단어가 허공을 맴돈다. 카를이 애처롭게 바라보지만 그녀는 아랑곳없이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카를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기어나간다. 그 품새에 세루스는 아까의 상황을 뒤로하고 한 번 더 생각했다. 정말, 잡혀 살겠구나.…, 라고.

  



                       *

  



카를이 나가고 방안에는 한 뱀파이어와 인간 한명만이 남았다. 세루스는 카를을 따라 자신도 나가야하는건가? 생각하던 차에 그의 부인이 말을 걸어왔다.

  


“세루스씨, 아까 제 이름도 잊어버리셨다했죠?”

“…그렇단다.”

“그러면, 다시 소개할게요.”

  


동화책을 한손에 들고, 다른 손은 가슴을 갖다 댄다. 허리를 정중히 숙이며 그녀가 말했다.

  


“루슈, 루슈라고해요. 본래는 평민이라 성이 없었지만 카를과 결혼했고, 영원을 맺어 현재는 루슈 인베니오랍니다. 후후.”

  


수줍게 루슈가 웃음을 흘린다. 다시 들어도 놀라운 결혼소식이었다. 더군다나 영원을 맺었다니. 세루스가 그녀의 귀를 흘깃 바라본다.

  


“영원을 맺은 것 치고는 혈색이 좋구나, 귀도 그렇고.”

  


영원을 맺고, 함께 영원을 살아간다. 세루스와 같은 이들의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방식이었고 하나의 맹세였다. 허나 루슈의 모습은… 여전히 인간의 모습이라 세루스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유예를 준거니?”

“네.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한 당일에도 계속 괜찮다고 했는데… 맹세를 해도 그가 제게 아직까지도 유예를 거두지 않았어요.”

“그렇구나. 역시….”

  


영원한 존재가 자신의 이에게 영원을 주기전의 유예. 한번 선택하면 다시는 인간이 될 수 없을 테니깐 신중히 선택하라는 의미로 시간을 주는 것이다.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짓는 루슈에 세루스는 그녀의 볼을 위로하듯 쓸어주었다.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란다.”

“네…, 알고 있어요. 그가 저를 배려한다는 걸. 하지만…….”

  


우물거리는 입이 머금은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세루스는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내고 싶은 건지를 알았다. 자신을 믿지 않는 것 같아서 슬프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세루스는 루슈도 루슈지만, 제 친우의 마음이 더 이해되기에 굳이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자신도 친우의 상황이 돼 본적이 있으니깐. 그래서…….

  

  


  

……그래서, 언제 그런 상황을?

  


세루스의 머릿속에 한바탕 파도가 일었다. 뭉텅이채로 잊었던 것들이 아직 완전히 잊을 수 없단 듯이 생생하게, 기억의 바다에서 온전히 보존된 채로 떠오른다. 루슈의 볼을 쓸던 손이 멈추었다. 루슈가 왜 그러냔 듯 그 순진한 녹안으로 세루스를 바라본다. 기억을 해내기전의 따뜻함이 감돌던 금안이, 그 온기를 잃은 채 녹안을 마주 응시한다. 볼을 쓸던 손을 내리며 루슈에게 말했다.

  


“바깥이 많이 어두워졌구나.”

“네? 아, 네. 많이 어두워졌어요. 벌써 밤이네요.”

“카를은 몰라도 너는 아직 인간이니…, 각방이라 했지. 여기서 자고가겠구나.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단다.”

  


루슈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루스는 그녀의 의사를 확인하고 더는 그녀에게 할 말이 없어 방을 나서려했다. 세루스의 눈빛이 한순간에 음울해짐을 본 루슈가 잠시만요! 하며, 세루스의 팔을 급히 잡았다.

  


“저기, 음, 어… 같이 잘래요?”

“…….”

  


묘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감돈다. 루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한건지, 그녀 자신도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가 결국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떠나려는 세루스를 붙잡으려고 아무 말을 한 것 같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에 세루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카를이 왜 그녀에게 유예를 준건지 천만번 이해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 여자들끼리 한번 같이 자자꾸나.”

  


잠을 잔다는 행위가 뱀파이어에게 별 의미 없는걸 루슈는 정말 모르는 건지, 세루스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붉은 볼이 그 웃음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 준다. 방 한편에 있는 나름 큰 침대로 뛰어가며 루슈가 이불보를 펼치며 팡팡 두들긴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세루스의 입 꼬리가 살며시 올린다.

  



                       *

  



불이 꺼진 방안은 오직 창문커튼사이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전부이다. 루슈가 하얀 이불보를 잡고 기분 좋은지 콧노래를 흘린다. 세루스는 멍하니 그녀의 옆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본다.

  


“잠이 안 오시나요?”

  


나지막이 루슈가 물어온다. 세루스는 그녀에게 자신은 잠을 안 잔다고 말할까싶다가 그냥 그렇단다, 라고 해주었다. 어쩐지 그녀의 순진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여자끼리 같이 자보자는 자신의 말에 그녀가 설레어 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에게 주어진 유예가 끝나기 전까진 이런 환상도 괜찮으리라.

  


“그럼 조금만 떠들다가 잘까요?”

  


루슈가 음…, 고민의 소리를 낸다. 세루스가 침대 옆의 탁상에 놔둔 책을 떠올렸다.

  


“저 동화는 어릴 때 읽었다고 했니?”

“황금의 별 이야기요? 네! 어릴 때 어머니가 항상 자기 전에 읽어주셨어요.”

  


이불보를 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루슈가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녀의 휘어진 눈과 입가의 미소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것이었다. 홀려야하는 뱀파이어가 역으로 홀릴 것 같은 그런 행복한 얼굴에 세루스가 눈동자만 굴려 흘깃 거린다. 루슈가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그 동화를 읽고 자기 전에 가끔 하늘에 보이는 노란, 황금의 별님을 보면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별님은 아직도 인간을 기다리고 있을까?”

  


세루스는 동화의 끝 문장을 떠올렸다. 별은 다시 여행을 떠났고, 죽은 인간을 만나길 기다린다. 어린 아이들의 눈에 맞춘 아름답고 낭만적이게 포장해낸 결말이었다.

  


다르게 본다면, 이미 죽은 사람을 계속 기다린다는 미련한 이야기였고. 웃는 것도, 우는 것도, 화내는 것도 모르던 무지한 황금, 아니 초라한 노란 별. 세루스가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책의 첫인상이었다. 별은 죽는다는 걸 그저 자기가 만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서, 그래서 기다린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



세월을 오래 살아 사라진 동심은 동화를 냉정하게 걸러 읽었다.

  


“그러고 보면 세루스씨도…”

“?”

  


제 이름이 나오자 세루스가 루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올곧은 녹안이 세루스를 향한다.

  


“눈이 황금색이에요, 동화의 별님처럼.”

  


어둠속에서 마치 황금처럼 빛나는 금안에 루슈가 감탄하듯 말했다. 세루스는 순간 이런 비슷한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마…, 아이테르도 이런 말을……. 아름아름 떠올려지는 기억의 무리들과 함께 세루스의 손위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루슈의 손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냉정히 책을 평가하던 가슴속 한편이 간질간질거렸다. 잘도 그런 말을 하며 손을 잡아오다니. 웬만한 뱀파이어들보다 유혹하는 게 수준급이다. 물론,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지만.

  


세루스가 창밖을 바라봤다. 커튼사이로 보이는 달은 동그랗고, 그 주위로 별들이 한가득 무리지어있다.

  


“하암…, 슬슬 졸리네요…….”

  


잠이 오는지 크게 하품을 하는 루슈의 눈이 감겼다가 뜨이고, 다시 감겼다. 세루스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속삭이며 말했다.

  


“푹 자렴, 루슈.”

  


맞잡은 손안이 꽤 따뜻하다. 그녀가 좋은 꿈을 꾸는걸 도와주고싶어 작은 환상을 보여주었다. 녹음을 담은 눈이 무얼 본건지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세루스는 그것을 보다가 바깥을 향해 다시 눈을 돌렸다. 무리지은 별들 멀리, 홀로있는 노란별이 보인다. 마치 서로를 응시하는 것같이 그 황금빛이 맞부딪힌다. 저 황금의 별은 아직도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가?

  


황금을 품은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방금전의 루슈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과 저게 닮았다니. 재밌는 말이다.  

애초에, 자신은 저 별과는 무척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돌아오지 못할 이를 기다리는 별…, 그건 저와 비슷한 상황일진 몰라도 절대 자신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세루스는 옛날, 자신보다 더 오래 살았던 이들이 제게 해주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영원한 존재가 그렇지 못한 것을 사랑했을 때 ‘재앙’이 찾아온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재앙’이 어떤 것인지.

  



                       *

  



상념에 젖었던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다.

방밖에서 누군가 문을 상스럽게 두드린다.

  


“루슈! 루슈!”

  


결국 문을 쾅 열며 들어오는 이는 카를이었다. 침대의 헤드에 기댄 채 멀뚱히 카를을 보는 세루스와 소란스런 소리에 눈썹을 치켜세운 루슈. 카를이 제 부인이 무사히 있는 것에 안심한 건지 루슈를 와락 껴안으려 했다.

  


“악!”

  


루슈의 발이 제 남편의 복부에 박히지만 않았다면…. 배를 끌어안으며 바닥을 구르는 카를의 모습이 꼴사납다. 루슈가 당장 나가요! 소리를 치자 카를이 나오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너무해….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나갔다.

  


루슈가 미안한 얼굴로 다시 세루스에게 사과한다. 세루스는 그녀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미워하지 마렴. 걱정돼서 그랬을 거란다.”

“아니, 친구잖아요. 걱정할게 뭐가 있다고….”

  


루슈가 이해 못하겠단 얼굴로 카를이 나간 문을 씩씩거리며 바라본다. 저런…. 아침 일찍이 깨서 더 그런 건진 몰라도, 화가 많이 난 눈치였다. 아니면, 유예때문일까? 세루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진정시켰다. 카를이 어제부터 까다롭게 구는 건 아마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거라 생각했으리라. 세루스가 보기엔, 카를은 나름대로 옳게 행동했다.

  


자신에게 그리 무례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엔 루슈를 지키고자 한거니깐. 자신이 제 영원을 잃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카를의 행동은 무척 옳았다. 기억을 자칫 어느 시점에, 어느 곳을 잘못 떠올렸다간 분명 피를 봤을 거다. 물론, 다행히 기억은 온전히 떠올랐고 그녀에게 아무런 유해한 짓도 하지 않았지만. 세루스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할지 잠시간 말을 골랐다.

  


“카를이 네게 유예를 줘서 섭섭하다고 했지?”

  


루슈가 고개를 돌려 세루스를 바라본다.

  


“한번 선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있단다.”

  


손에 잡힌 루슈의 손이 따뜻하다. 힘차게 뛰는 혈관이, 그녀에게서 맡아지는 향기가 달큰하다. 루슈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카를은 왜, 그는 제게 아직도 유예를 주는 건가요? 떨리는 눈빛을 보니 아까의 생각이 맞았나 보다. 유예를 준 카를이 루슈는 퍽 못마땅한가 보다. 마주친 녹색은 유한한 생명을 맹렬히 불태우고 있다. 이 유예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 그렇게. 세루스는 그 녹빛의 너머를 바라봤다.

  


“무서워서… 후회할 것 같아서 무서운 거야.”

  


루슈는 세루스의 말을 따라 읊조렸다. 무서워서…?

  


“오래 산다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란다. 마음이 무뎌지고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거야.”

“세루스씨….”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영원을 맹세한다는 거, 그래. 좋단다. 하지만 네가 정말로 영원을 택한다면… 카를은 네가 후회할까봐 무서워하는 거야.”

  


너 자신을 잃고, 우리처럼 방황할까봐. 그래서 네가 후회할 것 같아서. 누구에게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자조적인 태도로 세루스는 힘없이 말했다. 루슈가 물끄러미, 잡힌 제 손을 내려다본다.

  


“후회하지 않아요.”

  


루슈의 결심어린 목소리가 조곤조곤히 세루스의 귓가에 들려온다. 그런 대답에, 루슈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진다.

  


“…그래.”

  


감흥 없는 대답과는 달리 세루스는 제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후회하지 않는다던, 두려워 하지 말라던 그 장면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착한 아이…. 닮았구나. 애처로운 미소가 띄다 금세 사라졌다.



서로가 후회없는 선택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

  



루슈와 카를은 그렇게 세루스의 고성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루슈는 무릎위에 올려진 ‘황금의 별의 이야기’를 바라본다.

  


“우리 부인,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만 있어?”

  


카를이 루슈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같이 책을 바라봤다.

  


“세루스씨를 떠올리고 있었어요.”

“세루스를? 음…, 책이랑 세루스랑 공통점이라곤… 둘 다 노랭이…긴한데.”

  


제가 봐도 없어 보이는 말투에 카를이 잠시 제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또 제 말투를 혼내는 건 아닐까하고. 하지만 루슈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카를이 간밤에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싶어 걱정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루슈, 혹시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있잖아요, 세루스씨에게도 영원을 맺은 상대가 있었나요?”

  


루슈의 머리카락으로 장난치던 손이 예상치 못한 질문에 굳어버렸다. 카를의 표정마저도 심상찮은 반응에 그게 충분한 대답이 된 건지 루슈가 그를 바라보던 눈을 다시 돌려 책을 바라봤다. 말없는 제 부인에 카를이 끄응…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쓸었다.

  


“아냐아냐, 없어. 내가 알기론 없었어.”

“없었다고요?”

“맺기도 전에 죽었던 것 같던데.”

  


아……. 루슈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카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옛날에 영감탱이들이 한 말이 있어. 재앙에 빠진 놈들은 함부로 건들지말라고. 옛날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카를의 검붉은 눈동자가 울적하게 루슈를 향한다. 어깨에 올린 손이 그대로 당겨져 카를의 품에 안긴다.

  


“…나는 그녀석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혹시 전부다 정말 잊어버린 건 아닐까싶기도해.”

  


녀석이 언제 돌변할지 몰랐다. 카를은 제 영원을 가지면서 알게 됐다. 재앙이란 건 그런 거다. 멀쩡한 놈도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어떻게 하나뿐인 제 영원을 잃었는데 멀쩡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왔잖아요, 당신이랑 나랑.”

“맞아. 같이 왔지. 마음 한구석으론 여전히 걔를 믿고 있으니깐. 하나뿐인 친구라는 게 그런 거잖아….”

  


카를이 천천히 루슈를 품에서 떨어트렸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웃었다. 몇일인지, 몇년인지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같이 세계를 방황했었다. 동족들과 같이 무리 지어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던 카를은 저와 그녀 사이의 책을 보았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가진 책은 그러고 보면 저희와 비슷한 점은 많긴 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걔랑 이 별이랑은 같은 점이 노랗다는 거 밖에 없는 것 같아. 하하….”

  


책의 뒷부분이 떠올랐다. 죽은 인간을 기다리는 별이라니, 전혀 안 닮았어. 제가 아는 세루스는 결코 죽은 인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많은 죽음을 봐왔던 그녀도, 저도 잘 알고 있다. 죽은 건 죽은 것일 뿐이다. 동화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돌아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세루스는, 그녀는…….

  

  


“영감들이 말하던 재앙은… 재앙의 어원은, 죽어가는 별이랬지.”

  


점점 심해져가는 기억을 잊는 주기가, 세루스의 이상할정도로 평온하기 그지없는 행동들이.

아, 카를은 재앙의 의미를 알았다.



영원한 존재가 그렇지 못한 것을 사랑했을때… 우리는 죽어갈 것이다.



카를이 허망하게 웃으며 루슈를 다시 꽉 껴안았다. 작은 몸이 놀랐는지 주춤거리다가 제 등을 토닥거린다. 카를이 그 일정한 두들김을 느끼며 친우에 대한 걱정과, 제 눈앞의 이가 떠날 것 같은 불안감, 유예를 무시하고 자신 같은 공허한 괴물로 만들면 후회하지 않을까,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다.




분명히 누군가도 거쳤을 이 모든 순간들과 앞으로의 선택들을, 카를은 감당하지 못하며 눈을 감고 말았다.

  




                       *

  


그날 밤은, 한 별이 떨어져내렸다.

재앙 [Disaster] : 재앙의 어원 : 불길한 별, 떨어진 별, 부서지는 별, 그리고 죽어가는 별


#아르노셀글 #일상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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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2019.10.27 11:11
    @하르마첨스아세 *감사합니다^.^!
  • 2019.10.26 18:02
    아, 필멸자와 불멸자의 사랑이라. 불멸자는 어떤 형태로던 필멸자를 먹어치우는법.... 먹이와 포식자의 사랑은 우스꽝스럽고... 또 비극적이구만
    //(크 불멸자의 애잔함과 비극을 너무 수려하게 잘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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