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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수습 기록관.4

  • 2019.10.23 06:01
  • 조회수61

#공모전 #디아르노셀






“그 녀석이군,”

“엘은?”

  


에디는 화살을 집어넣으며 페란에게 다가갔다. 등에 업혀있던 엘은 조금 힘겹게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다리는 무게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해 비틀거렸고, 그대로 에디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버렸다. 잠깐이지만 모두의 얼굴에서 적지 않은 두려움이 맴돌았다. 

  


“얼마 안 남았어.”


  

페란은 아무렇지 않게 방패를 등에 짊어졌다. 

  


“무리야.”

  


에디는 엘의 옷깃이 구겨질 정도로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페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발짝 앞으로 발을 옮겼다.

  


“이건 자살행위라고.”

“아직 늦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 더 지체하다간….”

“젠장! 귀가 안 들려?”



페란이 걸음을 멈췄다. 에디의 눈동자에 비친 감정은 낯설지 않았다. 분노보다 깊고, 절망보다는 얕은 감정. 굳이 그것이 무엇인가 밝히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에레나는 페란에게 다가갔다.

  


“에디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아. 길드에 일단 내용을 보고하고 지원을 받아야겠어.”

“안 돼.”

“하지만….”

“더 지체하면, 그 자식이 민가에 도달한다. 그 죄 없는 사람들이 다치게 된다고.”

“엘도 사람이야. 그 얼굴도 모르는 자들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에디는 엘을 보며 말했다. 엘은 이미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식은땀만 흘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에디의 역정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페란의 목소리의 높이가 다소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가치는 비교대상이 아니다. 적어도 인간 수준에 있는 자들의 목숨에 경중을 논하지 마.”

“그래서 엘은 어떻게 하려고?”

“엘은 괜찮아.”

“개 같은 소리!”


  

에디가 벌떡 일어선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분노에 못 이겨 페란에게 몸을 내던지려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보다 빠르게 에레나의 다리가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에디처럼 나름 단련된 용병이 아니었다면 나무에 부딪히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지금 파티의 장은 페란이야.”

  


에레나는 젖은 숨을 내쉬며 억지로 진정을 되찾았다.


  

“엘은, 내가 보호할 거니까. 너는 맡은 임무에 충실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전위의 공격력이 떨어지게 될 건데.”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자고.”


  

게보그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에레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쓰러진 에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디는 그녀를 노려보며 손을 쳐냈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뺨을 내리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쯤 되어서야 에디가 항복하듯 손을 잡았다. 그 사이 페란도 진정을 되찾았다.

  


“그럼, 가움의 터가 있는 절벽으로 출발하자.”

“네.”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다. 어색하게 웃으며 주위의 눈치를 보던 나를 게보그가 힘껏 안았다. 조금 이상한, 팔뚝에 매달린 형상이 되어버렸다. 뺨이 부어오른 에디와 에레나가 피식 웃었다. 잠깐의 갈등은 찝찝하게 끝맺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이어오던 강행군에 일행은 손쉽게 가움의 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저번처럼 오스트리킨이 습격해오는 일도 없었고, 기타 맹수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의 경로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쉬운 예로는 계절을 타는 철새가 있을 거다. 늑대들이 사람과 비슷한 경로를 취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들의 먹잇감들을 기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평상시의 행위이기에 주의할 것은 아니다. 다만, 주변의 짐승이 하나도 없다면 그곳은 주의해야한다. 이유는 최상위 포식자에 해당하는 짐승조차 살아남지 못했거나, 피하는 ‘무언가’가 살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확히 [동물학의 기초]라는 서적에 적혀 있었다. 위브릴을 떠나 환경 연구를 하던 마법사가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쓴 책인데. 나름 유익하기도 해서 몇 번인가 읽었던 것 같다. 만일,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목적대로 위협적인 괴수에게 정확히 향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목숨을 내다 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걱정과 반대로, 과연 얼마나 희귀한 종의 괴수일지 궁금증도 생겼다. 살아 돌아만 간다면 습작으로 나우르의 생태와 함께 그 괴수에 대한 기록도 남길 수 있으리라. 침을 무겁게 넘기는 사이 벽돌과 바위 무더기가 가득한 가움의 터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곳에 정말 ‘무언가’ 서있었다.


  

자세한 형상은 설명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서있는 건지 웅크려 있는 지도 모른다. 점점 다가갈수록 검은 형체는 자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실타래 같았다. 단지 그 실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듯 꿈틀 거렸다. 페란은 익숙한 손짓으로 파티의 대형을 바꾸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엘은 나와 함께 최후방에 섰다. 맨앞은 게보그와 페란, 중간에 에레나, 후위에는 에디가 서서 화살을 장전하고 있었다.


  

“이런건 신도 못 봤겠군.”

  


게보그는 홀로 중얼거리며 도끼를 강하게 쥐었다. 엘이 형상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거대한 코끼리도, 털이 복슬복슬한 토끼나 순록도 아니고,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 같지도 않았다. 그저 거대한 검은 실타래가 엉클어져 있는 ‘무언가’였다.

  


“최대한 피해 없이 적의 동향을 살핀다. 말 그대로 탐색전이야. 에레나는 무리하지 마”

“걱정 마.”

“게보그는 신호에 맞춰서 짐승의 시선을 끌어주고, 에디는 급소로 보이는 장소에 신호용 화살을 꽂아줘.”

“쏘면, 맞는다.”

  


에디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곧 페란이 손짓했고, 게보그는 전보다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절벽 밑에서 새들이 놀라 날아갔고, 검은 무언가가 뒤돌아섰다. 그리고

  


모두를 얼어붙게 한 그 괴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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