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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Chapter 2. 그리지 숲

  • 2019.10.0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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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https://toonspoon.service.onstove.com/toonspoon/kr/board/list/arnocell/view/4132499?direction=latest&listType=3 



 날이 밝자 오트는 급하게 아침을 먹고 고모가 뒤에서 뭐라고 소리치는 것을 뒤로하고 집 밖으로 뛰어 나왔다. 문을 박차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새까만 단발에 뺨에 듬성듬성 난 주근깨가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그녀는 오트가 나오는 걸 보고는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렸다.


 “오트, 늦는 건 학교 가는 날만 해도 충분해.”

 “미안, 렌.”

 “늦은 이유는?”

 “늦게 일어났어.”

 “변명이라도 좀 만들어보니 그래?”

 “미안해, 정말로.”

 “또 늦으면 머리카락을 다 태워버릴거야.”

 “응.”


 사랑스러운 소녀의 입 밖으로 나오는 다소 무시무시한 말에도 오트는 겁을 먹지 않았다. 여태껏 그녀가 말한 대로 당했다면 지금쯤 자신에게 남아있는 건 눈알 한쪽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겁을 먹어 벌벌 떨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였다. 일 년 내내 따뜻하고 맑은 날이 많은 브리크리덴이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다. 오트는 기분 좋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의 소꿉친구에게 물었다. 


 “오늘은 뭘 하지?”

 “오늘은 그리지 숲에 갈 거야.”

 “그리지 숲?”


 그리지 숲이라면 오트와 렌이 사는 마을에서 동쪽으로 30분정도 걸으면 나오는 숲이었다. 브리크리덴은 근방의 위브릴 왕국과 합의해 그 숲을 개발금지구역으로 정했다. 때문에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동식물과 특이한 자연풍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이었다.


 “응, 겁나?”

 “전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겁먹어야하는 쪽은 렌이었다. 한 달 전 그리지 숲에 처음 갔을 때 나무 위에 누가 높이 올라가나 대결을 하다가 다람쥐 무리에게 공격을 당하고서는 펑펑 울었던 그녀였다. 그런 일을 당하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그 숲에 가자고 하는 렌이 용감한 건지 무심한 건지 오트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럼 어서 가자.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해. 집에 손님이 와 계시거든.”

 “손님?”

 

 둘은 마을을 벗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숲으로 가는 지름길로 향했다. 렌의 집에 왔다는 손님은 어제의 그 자칭 천사인 듯 했다. 지난 밤 렌의 집에서 묵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우리 마을엔 왜 온 거야?”


 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어제 그 분이 네 집에는 방문하시지 않았니?”

 “어제 와서 뭘 적기는 하던데.”

 “오트, 너 정말 그 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렌은 푸가토리움의 태양의 여신 레나, 빛의 여신 바엘, 물의 여신 루스를 섬기는 삼일교의 고위 신관중에서 가장 젊고 신망이 두텁다든지. 고향인 브리크리덴을 사랑하는 마음에 고위 신관의 직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영토를 며칠에 걸쳐 시찰을 다닌다든지 꽤 긴 시간동안 어제 본 청년에 대한 설명인지 찬양인지 구별이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분은 푸가토리움 고위신관 중에서도 우리 레나 교를 대표하는 분이셔.”

 “그건 들었어. 대단한 건가?”

 “엄청 대단하지. 그 나이에 신관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푸가토리움 직속 고위신관. 그런 분이 레나 교를 대표한다는 건 우리 브리크리덴의 큰 자랑거리라고. 게다가 얼굴도...”


 렌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웬만한 사내보다 용감하고 겁이 없는 렌이 수줍어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오트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별 거 없어 보이던데...”

 “말조심해, 오트.”

 “말조심해, 오트.”


오트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렌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놀리듯 도망쳤다. 렌은 오트의 머리카락을 다 태울 기세로 쫓아갔다.

 그렇게 장난을 치며 둘은 그리지 숲에 금방 다다랐다. 그리지 숲은 몇 번 와보지 않았지만 올 때마다 참 신비로운 곳이었다. 사방이 푸른 모습은 한결 같았지만 올 때마다 더 울창해졌으며 처음 보는 동식물들로 가득했다.


 “오트! 이리 와봐.”


렌이 다급하게 불렀다. 오트가 손에 게코 도마뱀을 올려놓고 구경하고 있었던 때였다. 오트는 렌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게 대체 뭐지?”


 렌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은 난생 처음 보는 검보라색을 띠는 생물이었다. 아니, 그것이 움직이기 전까진 생물인지도 몰랐다. 동물처럼도 식물처럼도 보이지 않는 달걀 정도 크기의 그것은 렌의 손바닥 위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꽤 귀여운 걸.”


 오트의 눈에 그것은 귀엽기보다 징그러운 쪽에 가까웠다.


 “너도 만져봐, 오트.”

 “사양할게.”

 “어머, 오트. 겁먹은 거야?”


 렌은 킬킬거리며 계속 오트에게 손바닥의 생물을 만져볼 것을 권했지만 오트는 자존심을 양보해서라도 만지기 싫었다. 그의 눈엔 썩어 죽어가는 고목에 한가득 피기 시작하는 버섯 같아 보였다.


 “얘, 저 겁쟁이는 네가 무섭대. 언니가 대신 귀여워해줄게.”


 그 보라색 생물은 렌이 쓰다듬자 끼잉끼잉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응? 왜 그러니? 배가 고픈 건가? 기다려봐.”

 

 렌은 수풀에 그것을 잠시 내려놓고 가져온 피크닉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렌이 이윽고 햄 조각 하나를 찾아 손에 쥐었을 때, 오트는 창백해져서 소리 질렀다.

 

 “렌!”


  순식간이었다. 그 조그맣던 생물이 렌의 두 배 크기로 변해서는 렌을 한 번에 집어삼켰다.


  “꺄악!”

 “젠장, 렌!”

 

 좀 전까지의 그걸 만지기 싫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오트는 그 거대해진 생물, 아니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괴물의 몸뚱아리를 찢어내어 렌을 꺼내려했지만, 그건 이 세상의 생명체 같지가 않았다. 마치 허공에다 무의미한 칼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렌이 그 괴물에게 먹힌 이상, 오트에게 무의미한 행동이란 없었다.


 “젠장! 젠장!”


 오트가 반쯤 미쳐서 괴물에게 칼질을 하고 있을 때, 주위가 어둑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칼질을 잠시 멈추고 빛을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온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돼...”


 오트의 주변은 렌을 집어삼켰던 괴물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 수십, 아니 수백 마리가 군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들은 오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도망쳐. 그의 뇌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도망쳐, 도망쳐라.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렌을...’ 


  무서워서 몸이 벌벌 떨렸지만 렌을 두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괴물들이 오트에게 충분히 가까워지자,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키-엑-!”


  오트는 그를 덮치는 강렬한 빛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공모전 #아르노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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