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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깃발 아래로(1)

  • 2019.10.0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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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디아르노셀




깃발 아래로

  





  

한 낮의 왕도는 한가하다.


정확히 말하면 ‘황제의 길’이고, 더 자세히 말해서 그로부터 뻗어져 나온 길의 말단에 가까운 일반적인 길이지만, 브리크리덴에 속한 땅 어디든 평화가 함께하는 것은 당연했다. 친절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군기를 자랑하는 경비병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결성한 상인회의 순찰병들, 그리고 그런 나이든 사람들을 지탱해주는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까지, 우리들의 브리크리덴은 평화로울 수밖에 없었다.


‘없었다’


이 당연한 단어가 깨진 건 아마 반년 전의 일.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이제 수도 ‘델피아’는 시끄러워질 예정이다. 각국의 수장들과 그를 경호하는 정예병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자랑하듯 한껏 차려입은 모양새로 등장하면, 수도의 시민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미리 나눠준 꽃을 뿌리거나 환호와 탄성을 내지르며 관객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이 바보 같은 연극은 가장 먼 나우르의 수장이 도착할 때까지 일 것이다. 나도 그 무리의 환대를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한가로운 길가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오랜만이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것. 정확히 말하면 같이 페르지노 스콜라의 동기인 ‘미첼’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한 일이나, 황제의 오른팔이자 나의 아버지인 ‘도나르’ 대장군의 명으로 이곳에 나와 있던 것이다. 나는 그저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경비대장의 노릇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랐던 것 같다. 아버지를 이기는 자식은 아직 없다.

  

미첼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뒤늦게 악수를 받을 때, 예전의 그때처럼 장난스러운 미첼이 잠시 보이는 듯했다.

  


“늦게 악수를 받은 대가로,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사.”

“술을 마시기엔 조금 그런 시기가 아닌가?”

“뭐야, 딱딱하게.”

“나름 수도의 경비대장이니까.”

  


미첼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이런 장난스러운 태도나, 조금 여성스러운 이목구비는 바뀐 것이 없었다. 단지 그 때보다 길게 기른 머리를 포니테일처럼 쭉 뺐다는 것. 그리고 겉옷의 길이가 조금 더 길고 두터워진 점 말고는 없었다.

  


“머리는 자를 생각 없어?”

“왜? 부럽냐?”

“아니, 검술에 방해될 거 같으니까. 그리고 왠지 긴 머리를 한 남자는 정이 안 가서.”

“너네 아빠 때문이지?”

  


반은 맞았다. 아버지도 유난히 머리가 잘 자라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단순히 말해 찰랑거리는 머리가 너무 거슬린다. 잘 관리 받은 말의 꼬리마냥 부드럽게 흔들리는 머리칼은, 스콜라 시절에도 거슬리는 대상이었다. 친하지 않았다면 그걸 시비로 싸움이라도 붙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정도니까. 미첼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라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하며 극구 거부했다. 그리고 1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 자신의 더 자란 꼬리를 자랑하고 있다.

  


“그냥 포기해. 절대 안 자를 거야. 내 주군께서도 못 자르시는 머리니까.”

“주군은 무슨.”

“나도 나름 경비대장이라고.”

  


미첼을 맞이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케임드웨이브의 주요 인사 명단에 이 녀석의 이름이 오른 것이 화근이었다. 도나르 경은 찢어질 것같이 눈을 얇게 뜬 채로 그 이름을 몇 번은 읽어 보더니, 다소 뜬금없이,

  


“네가 이 애를 마중해라.”

  


라는 소리를 지껄이셨다. 나름 수도 경비대장인 ‘로프트 헤쉬포드’가 한낱 케임드웨이브의 인사, 그것도 변방의 수비대장을 맞이해야 한다니. 그것도 단신으로. 만일 ‘미첼’이 아니었다면 그날 부자지간의 연을 걸고 진검승부를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미첼은 여전히 자신의 머리칼을 흔들며 장난을 걸고 있다.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상인도 있었고, 직무를 망각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경비병도 있었다. 골치 아프다. 우선, 이 골치 아픈 녀석을 데리고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마침 생각난 곳은 남쪽 성문에 위치한 관측소였다.

  

미첼은 돌로 지어진 굳건한 건물을 보며 탄성을 지르다가도, ‘너 출세했네?’ 식의 농담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그것만이면 다행이지만 관측소를 지키는 병사와 관리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는 통에 이상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설마 새로 부임하는 경비대장이신가?’

  

겨우 관측소 3층의 비어있는 집무실에 도착했다. 한시름을 놓은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미첼은 피곤하지도 않은 건지 현 황제의 초상화를 보며, ‘이분 빡빡이 아니신가?’라는 등의 재잘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근데 다음 일정은 뭐야?”

“일정이라니?”

  


미첼은 구경이 끝난 건지 내 옆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순간 저번 해에 영지에 묻어주었던 ‘왈츠’란 내 반려견이 생각났다. 그 녀석도 미첼처럼 장난기 많은 개였지. 감상에 젖으려는 무렵 미첼이 민감한 부분을 손으로 찌르며 다시 물어왔다.

  


“경비대장님. 다음 일정이 뭡니까?”

“그, 그만!”

“경비대장님!”

“그만하라니까!”

“경비대장님! 황궁….”

  


아이씨, 그만하라고! 

문을 들어온 병사의 표정은 벙쩌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보를 전하려던 병사는 졸지에 욕을 먹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창밖을 구경하는 척하며 시치미를 때고 있다. 미간을 짚으며 병사에게 손짓했다. 병사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그게, 황궁으로 들어오시랍니다.”

“휴, 다행이군.”

“저분이랑 같이.”

  


미첼은 웃고 있다.


병사의 전보를 듣고 황궁으로 향하기로 했다. 지금은 막 광장을 지나고 있다. 인조적으로 지어진 분수와 동상이 자리 잡은 광장에는 활기찬 어린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가득하다. 그 소리를 박자로 작은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노인의 손짓에 따라 모이를 줏어 먹으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새들의 지저귐이 생명의 하모니를 만들고 있지만. 나는 그와 동떨어진 사람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로 길을 걷고 있다. 

  


“아직도 화났어?”

  


눈치를 보는 미첼. 솔직히 말해 화가 엄청 난 것은 아니다. 단지, 아무렇지 않은 투로 지은 표정이 미첼이 보기엔 화가 난 표정으로 읽혔다는 것, 그래서 이 정적을 해소 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분위기를 깰 방법은 없다. 갑자기 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어색한 농담을 던질 수도 없으니까. 미첼은 눈치를 보는 중에도 오랜만에 온 수도의 풍경이 이색적인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능력이 없는 기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멍청한 귀족들의 자제처럼 지식에 문외한이었던 학생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수도는 고사하고, 타국인 케임드웨이브의 변방으로 발령 받았다. 그것도 실존하는 직위인가 싶은 정도의 ‘오지관측기사장’이란 알 수 없는 직위를 받은 채로 저 멀리 떠나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게 녀석의 장점이었다. 

  


“나중에 케임드웨이브의 수도를 지키는 기사장이 될 거니까. 만나게 되면 알아서 잘 모시라고, 로프트.”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지금의 녀석은 여전했다. 다행이었다. 내가 혹여나 했어야 할 말을 삼키는 겁쟁이라서, 그런 나의 영향으로 미첼 또한 겁쟁이로 전락할까봐 두려웠었다. 허나, 이런 걱정은 나에게 더 악영향을 줬다. 평소에 잘하던 검술훈련도 집중하지 못했고, 그런 나를 보고 뒤에서 욕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가문의 영향으로 수도에 발령받은 배부른 녀석이라고. 그래서 나는 미첼처럼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수도의 경비대장. 


이런 마음을 들게 만든 미첼도 나름 경비대장에 자리에 오른 것 같다. 그저 변방의 이름도 모르는 성을 지키는 자이지만, 자신만이 오를 수 있는 산을 오르고 정복한 것이다. 자랑스러운 한편, 안쓰러웠다. 분명 네가 내 자리에 있었다면 경비대장은 오히려 작은 자리로 느껴졌겠지.


미첼은 왈츠처럼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정말 변한 게 없네.”

“…뭐가?”

“전부. 그래서 질투도 생겨.”


  

미첼의 그 말을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말을 이해하게 된 건 나중에 되어서의 일이지만, 그것도 본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된 것이니 나는 정말로 하나도 모르고 있던 것이다. 미첼이 어떤 사람으로 변한 건지, 아니, ‘미첼’의 본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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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상 연합군이 성립되기 직전입니다.

몇 줄의 글을 읽고 대략 이랬을 것이다란 것을 추측해서 쓴 것이기에 다소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대략 5편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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