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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수습 기록관. 2

  • 2019.10.0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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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디아르노셀



2.



“이번 의뢰를 먼저 확인하고 온 ‘엘’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봐온 녀석들과는 달라. 최소 용종(種)중에서 소형 축에는 낄 정도의 크기, 형체는 뭔가 알 수 없었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해.”

“저기, 질문을 좀 해도 될까요?”

“그래.”

“어느 부분을 ‘강조’한 건지 모르겠는데.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형체.”

  


첫 만남부터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 중 에레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청록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가볍게 굴리며 말을 이어갔다.

  


“모든 짐승이나 용종들은 형체가 있어. 땅을 기어 다니면 다리가 없을 것이고, 하늘을 난다면 날개가 달려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거대한 발톱을 휘두른다거나, 무식한 곰이라면 그런 색의 털을 가득 두르고 있겠지.”

  


그녀는 턱으로 내 로브를 가리켰다. 곰. 한 해의 절반 이상이 겨울인 위브릴에는 하얀 털을 한 곰들이 있었다. 대부분 온순한 외모를 지녔지만, 핏방울 하나가 설원에 떨어지기도 전에 먹잇감을 낚아챌 정도로 무서운 포식자이다. 시상의 탑에 기록실에 있는 ‘위브릴의 생태’란 서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포식자에게 찢겨나간 생물의 삽화가 생생한 그림체로 새겨져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그 이후로는 공부를 핑계로 곰을 보기 위해 망원경을 빌리는 일은 없었다.


에레나의 짧은 말 한마디에 그때의 충격이 기억나는 것 같았다. 살짝 소름이 돌아 몸을 떨었다. 에디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그분이 당부한 것처럼 너는 최후방에서 우리의 사냥에 대한 내용을 기록할 거니까. 정 뭐하면 내 옆에만 붙어있으면 되고.”

  


페란은 짧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지금 중요한 건 에디처럼 위로하는 것도, 에레나처럼 겁을 주는 것도 아니란 듯. 다시 시선이 페란에게 쏠리는 사이 게보그는 굵은 팔뚝으로 굳게 팔짱을 꼈다.

  


“형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없다는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순수하게 힘 대 힘으로 맞붙는 것뿐이지.”


  

바보가 아닌 이상 페란의 말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특히나 기록관이자 위브릴의 출생자인 나는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혼자서 마법을 다룰 때도 그 마법이 어떠한 것이고, 어떤 형태로,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모르면 구현해낼 수 없다. 그게 불이나 피우는 작은 마법이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차원을 찢는 마법’을 사전지식도 없이 쓰게 된다면, 당연히 찢어지는 건 공간이나 차원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될 것이다. 나는 방금 했던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닫고 몸을 움츠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은 하나야. 녀석의 흔적을 뒤쫓아서 한 번 더 엘이 탐색할 기회를 주는 것.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어?”

  


에디는 손을 들고 말했다. 페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한숨은 전염되듯 게보그, 에레나의 두건에서도 새어 나왔다. 우연찮게 잠자코 있던 엘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엘은 황급히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는 어디론가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엘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에디가 말렸다.

  


“쫓아가지 마. 어차피 맘먹고 숨으면 찾지도 못해.”

“그렇지만….”

“지금 가장 자책하고 있는 녀석이 엘이야. 자칫하면 파티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에디의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다시 한번 더 해보는 수밖에 없어.”

“엘은 하겠다고 했어?

“답은 듣지 못했지만, 해야만 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에디는 끝에 혼자만 들릴 정도의 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짧은 회의는 끝을 맺었다.

페란은 잠시 바람 좀 쐬겠다는 말과 함께 게보그와 어디론가 사라졌고, 에레나는 엘을 찾으려는 건지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가버렸다. 당연하게도 야영지에는 에디와 나만 남게 되었다. 에디는 처음과 달리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장작불을 지키고 있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계속해서 불을 지켜보던 에디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위브릴은 살만해?”

“그건 어째서….”

“궁금해서.”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한 해의 절반이 겨울인 척박한 땅은, 대륙 사람들의 말대로 유배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저 선대의 죄를 대신해서 갚기 위해 고행을 자처하고 있다며 위브릴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나는 거짓말이라도 그런 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오직 ‘땅’만 척박했다면 게보그의 우스갯소리처럼 ‘죽지만 않으면 살만해’란 말이라도 했겠지.

에디는 내 대답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슬쩍 미소를 짓고는 ‘수련을 위해서’란 말을 남기고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짜 맞춘 것처럼 엘이 에레나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왔다. 에레나의 다소 육감적인 몸 때문인지 엘이 한층 더 왜소하게 보였다. 엘은 전보다는 깊지 않게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고, 그 덕분에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중성적인 목소리에 왜 그가 말을 아꼈는지 알 수 있었다. 왜소한 체형에 목소리마저 가냘프다면 용병집단 내에서 살아남기 힘들겠지. 엘의 사과를 받은 나는 품속에서 작은 씨앗을 꺼내 내밀었다.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게 만드는 마력이 깃든 씨앗입니다. 독은 아니니까, 힘들 때마다 드셔보세요.”

“감사합니다.”

  


손을 잡았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손도 작은 편이었다. 나름 굳은살이 붙은 손이었으나, 용병의 손이라기보다 평범한 소일거리를 하는 상인의 손에 가까웠다. 엘은 이런 시선을 눈치챈 듯 손을 황급히 뺐다. 그러자 에레나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멱살을 잡았다.

  


“뭐 하는 거야?”

“아니, 그게 그냥….”

“그, 그만.”

  


에레나는 혀를 차며 멱살을 놓아주었다. 놓았다기보다 내팽겨 쳐버리는 쪽이 맞겠다. 뒤로 넘어진 나는 엉덩이를 털며 겨우 일어났다. 에레나는 경멸하는 여성의 시선으로 내려보며 말했다.

  


“함부로 시선 걸치지 마. 그리고 엘의 목소리, 어디 가서 얘기하면 그 면상 그대로 박제해줄 테니까.”

  


엘은 어쩔 바를 몰라 했다. 현재의 관계를 망각하고, 마치 한량과 그를 아니꼽게 보는 경비와 같은, 수직적인 형상이 되어가는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 파티의 장인 페란과 동일한 급의 ‘초대인사’였으니까. 물론 나도 순간 그를 망각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뭔가 한바탕했나 본데?”

  


게보그의 낮은 목소리에는 장난 끼가 섞여 있었다. 페란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나와 에레나 사이에 섰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살점 하나라도 보호해줘야 하는 동료다. 서로 사과해.”

“뭐? 그런 낯 뜨거운 걸 하라고?”

“얼른.”


  

처음으로 상기된 표정을 짓는 에레나. 길길이 날뛰려는 에레나를 향해 페란이 한 번 더 명령했다. 에레나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를 바라봤다. 두려움에 움찔한 나를 갑자기 안더니 다소 경직된 어투로,

  


“내가 미안하다. 앞으로는 잘 지내보자.”

  


서적에 적었다면 온점을 한 글자, 한 글자 사이에 두껍게 박아놓아야 할 정도로 딱딱한 말투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를 향해 페란이 눈치를 주었다. 어정쩡하지만 그녀를 안고 똑같이 따라 말했다. 그제야 페란은 웃으며 박수를 쳤고, 뒤이어 게보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따라쳤다. 뒤늦게 정신이 돌아왔다. 난생처음 여자를 안고 있다는 것과 나의 얄팍한 가슴에 그녀의 풍만한 무언가가 굳게 짓눌려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황급히 에레나를 떼어내려 했으나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에레나는 두건으로 보일 만큼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만큼은 날 죽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됐지?”

“그래.”

  


페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욕을 내뱉으며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게보그는 여전히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될 수 있으면 에디에게 꼭 붙어 있으라고.”

  


어색하게 따라 웃는 동안 난처한 표정을 짓는 엘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지만 나의 재능인 ‘관찰’이 발동했던 것 같다. 시상의 탑에서 보던 기다란 고드름보다 투명하고, 겨울의 아침에 펼쳐진 하늘보다 푸른 눈동자. 이상하게도 그 눈동자는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기시감이 듦과 동시에 현실적이지 못한 그 눈동자에 괴리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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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상 공모전이 끝날 때까지 완결이 나긴 힘들 거 같습니다.

그래도 쓸 수 있는 데까지는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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