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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교황의 말

  • 2019.10.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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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 오던 날오두막에 3명의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2명은 시리앙마르의 고위 사제복을 입고 있었고, 1명은 전에도 몇 번 방문했었던 캐임드웨이브 원로회의 대표였다.


 나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고그들의 차림새를 보아 휴식을 취하러 온 것은 아닌듯하여 어느 정도의 격식을 갖추어 주었다그들은 이에 만족해했으며아르노셀 대륙의 흐름을 부여잡는 자들의 모습에 걸맞은 예의와 공손을 표했다.


 녹차를 대접할까 싶습니다만괜찮으신지요?”


 저희는 아무거나 괜찮은 걸로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필로스씨.”


 차를 대접받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직급과 신분의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오두막이 그들에게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즐기었다그들은 오두막의 생김새와 오두막 안팎에서 뛰노는 몇몇 작은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했고차의 향기와 은은한 빗소리를 즐기었다그들은 차를 은미하면서도 그들의 즐거움을 생기 있게 채울 수 있는 자들이었다.


 평소라면간식을 좀 더 내오면서 잡담으로 분위기를 만개시키는 즐거움을 마다하지 않았겠으나그들의 차림새를 보아 잡담을 나누고자 온 듯싶지는 않았고특히 사제 중 한명이 옷 품속에 지니고 있는 종이 두루마기는 내 생각에 확신을 실어주었다질 좋은 종이에 시리앙마르의 문양과 푸가토리움 고유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이는 교황의 친서임이 분명했다.


 신관 중 한명이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내게 입을 열며 말했다..아주 잠깐의 지나가는 시선을 의식할 정도면...역시 시리앙마르의 사제답긴 하군.


 “...선생님께서도 눈치 채셨겠지만사실 저희는 오늘 선생님께 레디우스 교황님의 말씀을 전달해드리고자 왔습니다.”


 ..레디우스 교황으로서의 공식적인 말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가아니면 레디우스 개인으로서의 사적인 말을 전하고자 하는 것인가?”


 애초에 친서에 시리앙마르와 푸가토리움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또사자나 지인이 아니라 고위사제를 직접 보낼 정도라면 이미 답은 나와 있었지만 그래도 확인 차 물어보았다


 사제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푸가로리움의 대표자이자판의 대리자이신 교황의 신분으로서 전하신 말씀입니다...비밀리에 전달해 드리는 것이니 공식적이라고는 말씀드리기 어렵겠군요.”


 교황의 말이라...교황의 말은 말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진다황제의 말이 아르노셀을 대변한다면 교황의 말은 곧 여신의 말을 대변함으로... 대륙을 통솔하는 제국의 위대한 황제의 신분도 교황의 말 한마디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마는 것이다늘 신도들과 아르노셀의 백성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이며 자비와 관용을 주장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잊고 지내지만교황이 결국 권력의 정점에 다다른 존재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그러나 다행히도 레디우스는 이 모든 사실을 꿰고 있었고권력을 자비와 인덕에 바칠 수 있는 현명한 자이니..그래도 교황의 말의 권위는 달라지지 않는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교황께서 할모르 나투 필로스당신께 일종의 사업을 제안하셨습니다.”


 사업?”


 이런...교황이 사업을 제안한다라..이야기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군.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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