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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그리움

  • 2019.09.27 10:36
  • 조회수122




기억하고 있니, 아이테르? 우리가 함께한 찰나의 시간을…

  


  

                                      ****

  

  

눈송이가 내려앉은 묘비 앞에 한 여인이 창백한 그 하얀 손으로 살며시 쓸어내린다. 펼쳐진 검은 양산을 접어 내리고, 소복이 쌓인 눈에 무릎을 꿇으며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무심한 금안에 미약한 그리움이 서린다. 여인은 다시 묘비에 손을 얹혔다. 이름이 있는 곳에 철자를 하나하나 짚으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의 이름을 되새기며. 아이테르. 영원을 살아갈 여인에게 영원히 기억될 존재.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며 여인은 과거를 회상했다. 아주 잠시였지만 꽤나 행복한 때를.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여인은 눈을 한번 깜빡였다.

  


 “예언이 내려졌단다.”

  


위브릴의 왕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마계의 문을 열어버리고, 대예언자의 예언과 함께 네 국가가 연합을 일궜다. 위브릴에서 쏟아질 혼돈과 맞서기 위해서. 담담한 목소리가 없는 이에게 세상의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묘비를 바라보며 여인은 고개를 떨궜다.

  


 “원래라면 나는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을 거야. 네가 살아있었다면 너를 데리고 함께 세계를 여행했을지도 모르지. 그래, 살아있었다면…….”

  


아이테르.

  


 “…나는 혼돈의 편에 설 거란다.”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다시 올린다. 과거를 회상하며 젖어들었던 그리움은 이제 없었다.

  


 “기억하고 있니, 아이테르? 우리가 함께한 찰나의 시간을…”

  


검은 양산을 짚어들고 일어섰다. 여인은 양산을 펼쳤다. 동시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양산에 그림자 진 얼굴은 한없이 허무해 보인다.

  


 “영원을 살아갈 존재에겐, 필멸자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나 덧없는 것이구나. 아이테르.”

  


내, 아이야. 내리는 눈꽃이 하얗게, 천천히, 떨어진다. 순간 눈바람이 휘몰아치더니 눈앞에 어린 아이가 나타나 그 맑은 눈을 빛냈다. 여인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그에 달려오며 그 품에 안기려했지만 여인에게 닿자마자 마치 신기루처럼, 눈꽃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환상… 그녀가 가장 잘하는 마법이었다.

  


 “비록 우리가 피로 이어진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난 너를 내 아이라고 생각했단다. 언제나, 늘, 지금도.”

  


흐린 미소를 지으며 여인은 양산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뒤돌아섰다.

  


 “사랑하는 내 아가, 잘 있으렴.”

  


이별을 고하는 말과 함께 다시 눈바람이 휘몰았다. 금안의 여인은 금세 사라지고, 새하얀 눈꽃이 묘비에 쌓여간다.

아이테르, 살아갈 이유를 잊고 오랜 세월을 방황하던 여인의 손을 붙잡아 그녀의 영원한 사랑을 얻은 뒷골목의 고아.

만약에 여인이 그날 아이를 두고 사냥하러 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녀의 영원한 사랑은 아이의 죽음과 함께 재앙이 되어버렸다. 




#세루스 #공모전 #PC #아르노셀글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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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2 00:27
    아련한 느낌 너무 좋습니다.
  • 2019.09.27 10:38
    마족은 감정 없는건 아닌가봐.. 눈물이 괜히 나네.
  • 2019.09.27 10:38
    .....( 어느새 울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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