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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대영웅과 마녀

  • 2019.09.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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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웅과 마녀
The Great Gholitte and White Witch


      작자 미상







보아라, 음유시인의 선율에 새겨질

보아라, 옛 이야기의 고된 양피지를 긁을 깃펜의 주인공을.



붉은 머리칼은 사자의 갈기처럼 태양빛으로 솟아 뻗고

새까만 눈은 구렁텅이처럼 응시하며

억센 두 팔과 손은 사자의 아가리와 같고

굵은 두 다리와 발은 고양이의 꼬리처럼 날래다네



하지만 다 얻은 것 같은 그도 슬프다네

사악한 마법사가 그의 딸을 속여 훔쳐냈고

그의 칼은 마법사의 팔뚝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네

허접한 노래꾼의 비루한 류트처럼 부서지고

비루한 난봉꾼의 허접한 나무잔처럼 깨져버린

아아, 대영웅 골리테의 젊은 시절이여

아아, 대영웅 골리테의 고된 시련이여



대영웅은 핏줄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에 탄식했다네

그는 전장의 승리에 취해 딸을 돌보지 않았다네


그는 영웅이고, 승리했지만, 굴러떨어졌지

하나뿐인 딸을 잃은 그는 길고도 아름답던 붉은 머리를 잘라냈다네

적장의 목을 꺾고 얻은 화려한 검을 녹여 뭉개버리고

흉칙하게 변한 검을 들고 집을 나섰네



대영웅은 다른 마법사를 찾아나섰다네

새하얀 밀랍의 마녀가 그를 돕겠다 일어났네

밀랍인형같은 흰 피부, 불꽃이 지피어진 회색의 눈

갓 내려 밟지 않은 첫눈같은 머리칼, 고아하고도 매혹적인 여린 몸

밀랍의 마녀는 초가 꽂힌 지팡이를 휘둘렀고

샛노란 불꽃으로 대영웅의 길을 밝혔네



모두가 잊어버린 이야기를

모두가 잃어버린 오솔길을

마녀와 대영웅은 헤쳐나갔네

속까지 시커매진 가시나무를 태워내고

일흔 일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의 목을 베었으며

백 서른 두개의 다리를 가진 불꽃지네의 다리를 모조리 꺾었다네



하지만 아직 검은 숲 너머 마법사에게 닿으려면

더더욱 모진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다네

아아, 여기부터는 어린아이여 나가시게

아아, 이곳부터는 연약한 이여 나가시게

끔찍하고도 추악하며,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서사시

대영웅과 마녀의 이야기라네.



맞네, 그들이 그로브닐 고산을 건널 때쯤

지금은 아득히 멀 옛날이라 어디인지도 잊혀진 그곳을 지날 때쯤

흉악하고도 흉측한 진흙 피의 자손들이 나타났다네

새까맣게 썩은 진흙의 손발톱을 휘두르고

마녀의 가슴을 긋고, 대영웅의 왼팔을 끊어냈다네

밀랍의 마녀는 흘러내리는 피를 태웠고

대영웅 골리테는 흘러내리는 피로 칼을 적셨지

아아 보게나, 떠오르나? 상상해보게, 폭풍의 울음처럼 번저나가는 저 노오란 불길을

아아 보게나, 떠오르나? 상상해보게, 영웅의 눈물처럼 비명지르는 저 괴이한 것들을



그렇게 그로브닐 고산의 꼭대기를 넘어, 가스페드 황야에 닿을 무렵이었다네

밀랍의 마녀는 그에게 알렸다네

오오, 영웅이여! 진흙의 괴물들이 고산 너머의 마을을 부수고 있어요

대영웅이 대답했다네

오오, 마녀여! 나 말고도 영웅은 세상에 널렸다네

오오, 마녀여! 딸에겐 이 모자란 아비가 전부라네

새하얀 밀랍의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영웅의 앞에서 촛불을 비추었다네



황야의 밤, 그대는 그 끔찍함을 아는가?

가스페드 황야의 원령, 악령, 사령, 혼령의 한을

영원한 떠돌이들의 영혼, 잠들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죽은 자들

가련한 여행자들의 슬픔, 고이 눕지 못해 기어다니는 가련한 이여


대영웅과 마녀는 기어오는 것들을 밟았고, 태웠고, 후려쳤네

걸어오는 것들을 넘어뜨리고, 꺾고, 한 줌의 재로 만들었지



하지만 결국 죽음의 종복에게 물린 마녀는 발목을 잘라야 했다네

대영웅의 깔끔한 칼질에 그녀의 비명이 황야에 울려퍼졌지

마녀는 영웅의 등짐이 되었고

어깨 너머로 지팡이를 길게 내밀어 주변을 비추었네



하지만 결국 상실의 망령에 찔린 대영웅은 눈을 버려야 했다네

마녀의 날카로운 지팡이끝에 그의 고통이 밤을 뒤흔들었지

대영웅은 영원한 어둠에 빠졌고


밀랍 마녀의 말과 목을 어루만지는 손짓으로 한없이 걸어갔네



한참, 정말 한참이네. 그들은 정말이지 한참을 걸었다네.

밀랍 마녀의 발목이 잘린 채 아물고

대영웅의 뽑힌 눈알 구멍이 말라붙어 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황야가 사막으로, 다시 숲으로, 다시 황야로 변할 만큼

기나긴 여정의 끝에 마법사의 탑이 보였네

밀랍 마녀는 외쳤다네



대영웅이시여, 대영웅이시여! 마법사의 탑이 보여요!

오오, 밀랍의 마녀여! 그대 나의 믿음 있는 눈으로서 정말인가!

대영웅이시여, 대영웅이시여! 그대 여정의 끝이 보여요!

대영웅은 기쁘게 울부짖었고

앞을 가로막는 거인 늑대들의 골통을 전부 바수어버렸다네

쇠몽둥이가 되어버린 보검은 그의 손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지



마법사의 탑에서는 시커먼 옷의 마녀가 나타났다네

시커먼 옷의 마녀는 사악한 술수로 비를 불렀고

밀랍 마녀는 지팡이의 촛불이 꺼지고 말았지

하얀 마녀는 힘없이 쓰러져 웅크렸네

하지만 대영웅은 비로서 멈출 수 없었네

밀랍 마녀의 도움으로 치열한 혈전을 치루던 그는

수 차례의 벼락을 얻어맞고, 몇 번이나 얼음 송곳이 몸에 박혔네



하지만 대영웅은 그 쇠몽둥이 칼로

사악한 검은 마녀의 골통을 내리쳐 통쾌하게 뽀갰다네!

비는 그쳤고, 영웅은 불을 피워 밀랍의 마녀를 일으켰지



그러자 검은 마법사가 나와 울었다네

대영웅은 울음소리의 주인이 누구냐 물었고

밀랍의 마녀는 검은 옷의 마법사라 답했다네

통곡의 울음소리를 쫓아 대영웅은 마법사의 머리 위로 칼을 내리쳤네

하지만 마법사의 손이 훨씬 빨랐지

새까맣게 얼어붙은 저주의 칼날이

영웅의 무릎과 팔꿈치에 구멍을 냈지

꿇어앉아 힘을 잃은 대영웅의 앞에 마법사가 우뚝 섰네

손을 휘저어 신비로운 술수로 목청을 키운 채로 외쳤네



아아, 전장의 대영웅 골리테 아스켄다르는 들으라

아아, 나 진흙 탑의 마법사, 검은 옷의 하스칸도르의 슬픔을 들으라

그대의 첫째 죄는 그대의 딸을 돌보지 못함이요

그대의 둘째 죄는 그대의 딸을 알아보지 못함이요

그대의 셋째 죄는 그대의 딸을 죽임이요

그대의 넷째 죄는 무고한 이를 끌어들임이라



아아, 나 진흙 탑의 마법사, 영웅 골리테의 딸 스넬비어 골리테돗의 정당한 사랑 받은 자

그대가 머리를 터트린 마녀가 그대의 딸이자, 나의 배필이고, 그대와 나의 사랑이었네

그대의 다섯째 죄는 검은 옷 입은 마법사에 대한 편견이고

그대의 여섯째 죄는 검은 옷 입은 마녀에 대한 편견이라

어찌하여 영웅의 눈이 총기 없이 세상의 속삭임에 흔들리고

어찌하여 대영웅의 잣대가 하찮은 백정의 것과 같을꼬



아아, 나 검은 옷의 하스칸도르, 영웅 골리테의 딸 스넬비어 골리테돗의 정당한 사랑 받은 자

당신의 딸은 수백의 사경을 해매 흉터로 뒤덮인 그대를 알아보지 못했고

당신의 눈인 밀랍의 초는 그대의 딸을 알 턱이 없었지!

당신의 두 눈은 멀었고, 당신은 딸의 목소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끔찍한 아비였음을!

당신의 코는 멀었고, 술의 향은 알아차려도 딸의 체향은 몰라보는 추접한 아비였음을!



대영웅은 깊이 슬퍼했네

팔과 무릎이 박살나 스스로의 목숨을 끊지도 못한 채

굴욕스러운 마법사의 선언을 듣고 돌아와야만 했네

딸의 시신조차 되돌려받지 못했고

더더욱 슬프게도 그 주검을 달라 하지도 못했네



마을로 돌아온 대영웅은  몸져 누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네

곰과 같던 몸은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묘목처럼 말라붙고 쪼그라져

사자와 같던 머리카락은 모두 빠지고 말았지

그는 고작 엿새만에 슬픔에 빠져 말라죽었다네

사람들은 발목 잘린 밀랍 마녀에게 사정을 물었다네

밀랍 마녀는 슬프게, 울면서, 통탄스럽게 말했지



오오, 대영웅께서는 마법사과 장렬히 싸우다 패배하셨답니다

오오, 대영웅께서는 따님을 되찾지 못한 슬픔에 괴로워하셨답니다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했고

머리를 풀어 그의 죽음을 기렸네

황금으로 장식된 은 관에 담아 장례를 치르고

구리와 놋쇠로 만들어진 비석을 높게 세웠다네

대영웅의 명예와 가르침은 후대에 널리 퍼졌고

어린 아이들은 그 동화를 들으며 기사의 꿈을 키우지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기사된 이들의 검에 안심하며

매일 밤을 평온한 마음 속에 지새든가 자든가 한다네



단 한 명, 밀랍의 마녀만이 아무도 몰래 노래하네

시계탑 다락방의 모두가 잠든 새벽에

누가 들을까 전전긍긍한다며 노래한다네

대영웅과 마녀를, 거짓말로 명예를 지키고

대영웅과 마녀를, 속임수로 희망을 감싸안은

두 번째 죄인, 거짓을 비추는 밀랍초

이제 녹아내려 임종의 끝을 맞이할 때까지

매일 밤, 속죄와 죄책감을 담아

나, 바로 나, 밀랍초의 마녀, 거짓의 마녀가, 높디 높은 시계탑에서.







#대서사시 #서사시 #공모전 #디아르노셀 #디_아르노셀 #대영웅과마녀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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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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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2019.11.10 00:46
    응원합니다/
  • 작성자 2019.11.04 10:24
    @STOVE21255776 사실 겨울불꽃의 시대 본편하고는 조금 괴리가 있는 내용이지만, 겨울불꽃의 시대 세계관에서 영향을 안 받았다고 말하기 더 어려운 작품이긴 하죠...
  • 2019.11.04 08:47
    겨울 불꽃을 읽는데 배경지식으로서 굉장히 좋겠네요
  • 작성자 2019.09.26 00:37
    @아르부르드갑브드 감사합니다 ㅜㅜ!!!
  • 2019.09.26 00:35
    브라보~ 당신은 가치는 대단하군요. 앞으로도 광장에서 활동 많이 부탁합니다.
  • 작성자 2019.09.25 15:13
    @라게시리아 @긴린 감사합니다 ㅜㅜㅜ
  • 2019.09.25 14:11
    짝짝짝 그대의
    작품에 감동했습니다.
  • 2019.09.25 14:11
    노래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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