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m" 에 대한 검색 결과
제목+내용
- 위브릴에는 ‘겨울 꽃이 피다’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 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평소와 다르게 기분이 좋지 않거나 화를 낸다면 마음에 겨울 꽃이 피어 그렇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겨울 꽃이 피어서 그렇지 사람이 나쁜 건 아니라는 자상한 마음이고, 동시에 긴 추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간접적으로 경고하는 격언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혹독한 겨울이 위브릴에서는 일상이었다. “뭐가 문제야?” “그런 거 없어요.” “없기는. 멀쩡한 학교 때려치우고 전쟁터로 가겠다는데 이유가 없어? 네가 겨울 꽃이 단단히 박혔구나.” 위브릴의 3대 명물 중 하나라는 마탑은 연구 시설과 학교의 기능을 겸했다. 마탑의 교육을 받은 학생은 좋은 일자리를 얻기 쉽고 연구자로 남아 국가 지원을 받을 수도 있어서 곧잘 엘리트 취급을 받았다. 그런 마탑 중 하나인 ‘바빌루’를 박차고 나가는 학생이란, 퇴학 외에는 1년에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교수님, 제 성적 아시잖아요. 여기 있어 봐야 제대로 졸업은 할지 장담도 못하는데 이러다 학사 경고 나오면 저희 아버지 쓰러지십니다.” “알지. 알아. 발레타라는 이름 대면 다들 교내 축제에서 대상 받은 가수로만 기억하지, 마법 유체역학 수업에서 3년째 D학점밖에 못 받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더라고. 그래서 난 자네가 차라리 학교 그만두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나선다면 응원해줄 생각도 있었어. 헌데 자원입대라니? 남자들만 전쟁에서 활약하니 샘이 나기라도 했나?” 마법 유체역학을 담당하는 길반 교수 입장에서 발레타는 간신히 낙제만 면하는 불량 학생이었다. 3년 동안 계속 도전한 끈기는 칭찬할만하나 노력이 실패의 면죄부일 수는 없었다. 발레타는 어깨 아래로 내려온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신중히 말을 고를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었다. “국왕님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국민을 사랑하시고, 저는 딸기농사를 짓고 싶어요.” “……지금 입으로 똥 싼 거냐? 휴지 줄까?” 교수가 발레타의 정신건강을 완곡한 표현으로 의심했지만 발레타는 웃지도 않고 책상 모서리만 노려보았다. “위대한 흑마도사 디아산스 위브릴께서 말씀하시길, 대륙 정복을 위해 마계의 문을 열었으니 괴물들이 전쟁을 대신하고 국민들은 그대로 생업에 종사하라! 참 나, 그냥 국민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게 싫어서 그렇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뭘 잘난 척 하고 징환월o작가페이지로 이동
7 2
155
- 하루의 마무리는 뭐라고 생각해? 잠? 에이, 그건 생리현상이고. 피로를 푼다거나 긴장 없애려고 하는 행동 있잖아. 샤워라든지…… 담배? 아아, 너 담배 좋아했지. 무기는 섬세한 거 다루는 주제에 담배라니, 너 그러다 호흡 달려서 고생한다. 오늘 군인 놈 하나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병사들은 같은 규격의 무기를 써야 전쟁 치르기 편하다나. 나보고 칼이나 활 중에 고르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거지. 아니면 창이나…… 메이스까진 인정되는 모양이던데. 아무튼, 멀쩡히 내 장비 있는데 어색하게 왜 다른 걸 쓰겠어. 그거 쓰다 제 실력 안 나와서 죽으면 누가 책임져줘? 참 쓸데없는 트집 아냐? 칼이랑 활만 무기냐고. 지들 쓰는 무기가 더 우월하다는 것처럼 으스대는 녀석도 있더라니까. 기초 군사교육 배울 때 그 두 가지를 배우는 건 뛰어나서가 아니라 기본적이고 다루기 쉬워서 그런 거잖아. 응용하기 좋고 연구 많이 되어 있으니까. 근데 어차피 마물 때려잡고 몬스터 죽이는데 칼이면 어떻게 숟가락이면 어때? 작년에 내가 타룸 광산 벌레들 정리할 때도 급하면 안전모로 때려잡고 그랬어. 그래서 뭐, 안전모로 뒤통수 후려 잡은 놈은 내년에 부활이라도 하시나? 사내놈들이 말 같지도 않은 우월주의나 들먹이고,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밧줄이 좋아. 적당히 칼침 박아 넣고 휙휙 던지면 낚시 하는 기분 들고 손맛도 있거든. 이거 봐봐. 끝에는 날을 더 달아서 중심을 잡아놨어. 무게감이 약간 있어야 다루기도 편하고 매듭도 튼튼하게 지어지거든. 무게? 에이, 요 정도 무게 못 가누면 용병 관두고 공원에서 바둑이나 둬야지. 우리 할아버지처럼. 할아버지 얘기 하니까 생각났는데, 난 아마 그렇게 늙기는 힘들 거야. 응? 우리 할아버진 요리사였어. 그러니 곱게 늙어서 친구 분들이랑 일광욕이나 하고 사시지. 나처럼 험한 일 하면 말년이 힘들어. 알잖아, ** 되든가 트라우마로 정신 오락가락 하든가, 그런 사람들. 용병은 워낙 피 튀기고 썰고 찌르는 게 일이니 오죽하겠냐고. 적당한 때에 충분히 벌면 탁! 손 털고 관두는 편이 좋아. 당장은 아니고, 나도 몇십년 더 지나면 고민해볼 문제긴 하지. 그러고 보면 이번 출정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혼돈이니 평화니 뭐 그런 건 윗대가리들이 고민할 문제지만, 용병에게 필요한 평화는 충분한 돈이잖아? 마계의 괴물들이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놈들이 아니라서 연구나 시약 제조 쪽환월o작가페이지로 이동
2 0
191
- “건방지구나!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쯤은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다!” 붉은 피부의 병사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세 사람을 끌어다 바닥에 내던졌다. 그들은 갑옷을 입었으나 수풀 사이를 밧줄로 묶여 끌려온 탓에 풀과 먼지로 엉망이었다. “무슨 일인데?” 커다란 군용 천막 안에서 적갈색 머리의 젊은 여성이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머리칼을 빗어 내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폼이 방금까지 자다 일어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을 끌고 왔던 병사가 그에게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 “헤에, 사칭범?” 정찰병은 근처 마을에서 마계 세력을 자처하며 행인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 곧바로 제압했다. 별 볼일 없는 실력으로 마계인을 사칭했다는 이야기에 여성은 즐거워하며 팔짱을 꼈다. 쓰러졌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다른 병사가 다가와 말없이 무릎 뒤쪽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고통 때문인지 불만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이놈들! 나는 위대한 마계의 아르노셀 침공군 제2군단장 케인이다. 진정 내가 군단을 소환해 전부 쓸어버리길 바라는 것이냐!” “참으십시오, 군단장님. 사령관님의 지시 없이는 힘을 개방하시면 안 됩니다.” “크윽, 내가 힘을 봉인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라케이온 부관의 말이 맞소. 이 자리는 내게 맡겨주시게.” 삼십 대 정도 되는 통통한 남자가 케인을 진정시켰다. 전쟁과는 거리가 먼 유순한 인상의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 여성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흰 피부와 뾰족한 귀가 유난히 남자의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엘프들의 터전인 모양이군. 나는 즈벤던이라 하오. 마계에서 온 혼돈의 군세를 이끄는 제3군단장이며…….” “푸하하핫, 넌 내가 엘프로 보여? 게다가 너도 군단장이면 마계 군단장님들이 단체로 잡혔네?” 여성이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에서 경계를 서거나 이야기를 나누던 병사들도 킥킥거리며 밧줄이 묶인 이들을 곁눈질했다. 즈벤던은 병영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예의를 갖추지 못한 분들인가. 아인종의 무리는…….” “어이, 치벨! 이쪽으로 좀 와봐라.” 여성의 외침 때문에 즈벤던의 비난은 무시되었다. 잠시 후 땅을 쿵쿵 울리며 나타난 치벨은 어깨 높이만 해도 7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고릴라였다. “부르셨습니까, 알라티 님.” “여기 이놈이 자기가 마계 3군단장이라는데, 너 혹환월o작가페이지로 이동
2 0
75
닉네임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