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에는 많은 것이 담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간단한 지시와 대영웅의 서사시까지.
정보를 끌어모아 담는 이 '문자'라는 체계에 내 평생을 바쳐왔다. 80년이라는 세월을.
우리 신민들에게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을 선물해주기 위해. 궁정 기술자로 지내며 왕이 7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난 한결같은 목표를 유지해왔다.
지금은 이 작은 점토판에 얼마 되지 않는 내용만을 새길 수 있을 뿐이지만, 머지 않아 우리의 후손들은 더 많은 정보를 더 가벼운 매체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새벽, 궁정 지하실에서는 대기중의 마력을 문자에 불어넣어 활용하는 실험이 진행될 것이다. 이 '마법'이라는 기술이 성공한다면, 우리들은 새로운 자원을 가지고 그동안 시달려왔던 야수, 마수들에게도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가르쳐온 제자들의 얼굴도 오랜만에 볼 수 있겠지.
역사의 방향은 우리들이 바꾸게 될 것이다.
피로에 좋다는 차 내음이 사무실에 풍긴다.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손에 묻는 것도 모르고, 동료 서기가 가져온 실록의 초본을 열심히 옮겨적는다.
왕립 기록관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다.
몸 쓰는 일을 피해서 들어온 나같은 게으름뱅이들은 마지 못해 일하곤 한다. 기밀을 보관하는 시설이니만큼 한 번 취직하면 죽기 직전까지 몸을 담아야 하니까. 함부로 탈출했다고 하면 목 위 부분이 날아간다는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문'이 열린 이후로 왕궁 내부가 더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일도 늘었다. 몇몇 동료들은 퇴근한지 6시간도 안되어 다시 불려나올 정도가 되었고, 자정 이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없어질 지경이 되었다.
나의 퇴근길에도 달빛이 흐리게 빛을 낸다. 오늘은 특별한 짐이 있어 소가 끄는 수레를 탔다. 말 수레를 타기에는 짐이 너무 무겁고, 말의 빠른 속도에 의지했다간 이 짐짝이 부서질 것이다. 새벽녘의 추위가 엄습해오고, 혹시 모른다는 희망감에 아직까지 불이 켜진 가게가 있나 찾아보지만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얼음장같은 손을 싹싹 비비며 입김으로 녹여볼 뿐이었다. 뜨듯한 소의 등이 그나마 오늘의 위안이 되어준다.
...왜? 어째서?
분명 실험은 성공했다. 이제 우리들은 마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알게 되었고, 우리 왕국의 문명